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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 가격의 비밀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812548


항공권 가격을 취재하고 있다고 했더니, 주변에서도 이것저것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마침 여름휴가 앞두고 저렴한 표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분들도 많았고요. 8뉴스에 리포트한 내용 외에, 제가 받은 질문들, 저도 궁금했고 이번에 알게 된 점들을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1. “‘정가’에 팔리는 항공권은 세계적으로 10%뿐이라며?”

한 선배가 이것도 한 번 알아보라며 하신 질문입니다. 워낙 똑같은 비행기를 타더라도 항공권 가격이 제각각이다 보니 이런 ‘썰’이 퍼져 있나 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항공권은 이 ‘정가’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상품입니다. 아마 한 비행기 안에서 같은 돈을 내고 탑승한 승객을 찾기가 더 힘들 거예요.

  물론 각 비행편에 대한 항공권 가격 기준표는 있습니다. 여행사들은 1년치 항공스케줄을 미리 짜서 해마다 3월까지 이를 –내부 영업점과 여행사들에- 배포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표를 바탕으로 탑승객 수요 등을 봐가며 계속 표의 가격과 탑승조건 등을 조절합니다.

  여객기에는 퍼스트/비즈니스/이코노미 3가지 좌석 뿐이지만, 실제 항공사는 내부적으로 국제선 여객기 한 편당 거의 20가지 ‘클래스’를 운용합니다. 같은 이코노미 좌석이라도 항공권 판매시기와 탑승조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거죠. (국제선 비행기 한 편당 거의 20개에 달하는 ‘클래스’ 중 절반은 이쪽에서 봤을 때 도착지, 즉 해외에서 취급되는 클래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서 구입하게 되는 클래스는 열 가지 정도겠죠.) 여기에 왕복, 편도, in/out이 다른 왕복, 환승, 마일리지 탑승 등등을 감안하면, 한 여객기 안에서 나와 같은 요금을 내고 탑승하는 사람을 한 사람 더 찾아내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항공사는 이런 식으로 비행기 한편당 거둘 수 있는 영업이익이 가능한 한 최대가 되도록 표값을 올리고 내리는 겁니다. 즉, 여객기 한 편에서 팔린 모든 표의 총합이 최대가 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싼 표를 구해 타면, 내 옆자리 사람은 내가 싸게 산 만큼 비싼 표를 구해 탔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스마트 여행족들의 승부욕을 부추기는 발언 같네요^^

2. 언제쯤 사는 게 제일 싸?

 A라는 항공사의 이코노미 클래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이 항공사는 모월 며칠 몇시에 B라는 나라로 직항하게 돼 있는 항공편 C에 대해 그해 3월 확정된 가격 기준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 비행편에 대한 승객들의 항공권 구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까지는 이 기준 가격이 나가 있기 때문에, 항공권을 너무 빨리 사도 ‘중간급의 가격’을 지불하게 되는 겁니다. (뉴스 리포트 참조)

  우리 나라 여행업계에서는 보통 장거리 비행의 경우 발권일을 기준으로 120일 전, 단거리를 기준으로 90일 전쯤부터 구매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보통 이 시기에 다른 항공사와 경쟁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티켓, 즉 ‘얼리버드 할인항공권’이 풀립니다. 성수기/비수기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 여객기 이코노미 클래스당 10~20%의 항공권을 이 ‘얼리버드 항공권’으로 내놓습니다. 이렇게 내놓은 항공권이 다 팔리면 한 클래스씩 단계를 올려가며 더 비싼 항공권을 내놓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보통 비행 일주일전쯤에 가장 비싼 표가 나와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보통 넉달에서 석달전, 단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석달에서 두달전쯤에 항공권을 알아보는 게 ‘얼리버드 항공권’을 여유있게 구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상황을 봐가며 표가 너무 잘 팔릴 것 같다 싶으면 하위 클래스, 즉 저렴한 티켓을 일찍 닫기도 합니다. 반대로 너무 안 팔리고 있다 싶으면 할인 기간을 연장하기도 하죠. 상위 클래스로 하나씩 올라가는 기간도 표가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 유동적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아까 1년치 항공스케쥴 항공권의 가격 기준표가 배포되는 시점이 3월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렇다 보니 4월에는 항공사나 여행사나 할인을 미리 계획하기 힘듭니다. 4월에 할인항공권 행사가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윱니다.

  미국처럼 워낙 우리 나라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일수록, 저렴한 항공권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대개 휴양지를 왕복하는 비행편보다, 출장자 등 고정 승객들이 많은 항공편일 수록 이런 현상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특히 미국은 6월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와 8월말에 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의 경우 할인항공권이 아예 나오지 않다시피 합니다. 유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몰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굳이 할인항공권까지 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 시기에 미국을 왔다갔다 하려면 가격보다는 표를 구할 수 있을지부터 먼저 알아보는 게 좋습니다.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자리가 너무 많이 남으면 이른바 ‘땡처리’ 항공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항공권은 점점 줄어드는 추셉니다. 전세기가 아닌 일반 여객기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표를 구하기가 힘듭니다. 또 ‘땡처리’ 항공권으로는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도 자기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기 힘드니까, 아무리 싼 표라고 해도 별로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3. 내가 산 표가 ‘얼리버드 티켓’인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내가 타려는 비행기에 어떤 가격대의 표들이 있는지, 내가 몇번째 표를 사는 건지 알 순 없어요?

이것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동료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공개하고 있는 항공사는 없습니다. 국토해양부에 문의해 보기도 했는데, 이런 것은 항공사 영업의 영역으로 봐야 할 듯하다, 딱히 불충분한 정보 제공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내가 ‘얼리버드 항공권’을 샀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보통 얼리버드 항공권 등 하위 클래스의 티켓일수록 발권기간과 환불 조건, 날짜 변경 등에 대한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상당히 복잡한 기준인데, 최대한 간단히 보자면, 구입 직후 발권 내지 구입 이후 최대한 3일 안에 발권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으면 ‘얼리버드 항공권’입니다. 반대로 비행 직전까지 언제든지 탑승 날짜를 변경할 수 있는 항공권이라면 그 비행기에서 가장 비싼 항공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4. 그래도 더 싼 표를 구할 수는 없을까?

  이른바 ‘홀세일업체’라고 불리는 대형 여행사, 온라인 할인항공권을 취급하는 여행사들의 사이트를 통해 항공권을 구입하는 게 사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항공사들은 90%의 표를 이른바 간판, 즉 여행사 간접판매로 처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보통 같은 클래스의 표라도 항공사 영업점에서 취급하는 것보다 여행사에 1~5만원 가량 싸게 주는 게 보통입니다. 여행사들은 이 표를 받아서 카드사 제휴 등의 방법을 통해 자체 이벤트를 실시합니다. 이렇게 해서 항공권 가격을 좀더 내려 다른 홀세일업체들과 경쟁하는 거죠. 그러니 홀세일업체의 온라인사이트에서 일정 기간 동안 여러 가격을 비교해보다가 적당한 표를 구입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단거리 해외여행을 자주 한다면, 저비용항공사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거리는 습관, 괜찮습니다^^ 이벤트성 항공권, 더 이상 쌀 수 없는 항공권이 종종 나옵니다. 그러나 보통 이런 이벤트성 항공권은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맞는 것을 구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하고, 시간 여유가 좀 있다면, 늘 체크하면서 내 상황에 맞는 표를 기다려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특히 여행 고수들은 저비용항공사들의 신규노선 취항 예고를 유심히 살펴둔다고 합니다. 신규노선 취항 시기는 이미 예고돼 있는 것이니 시기를 미리 알 수 있는데, 이때 이벤트성 항공권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 전통적인 항공사들도 요즘은 가끔씩 홈페이지 안에서 아주 저렴한 표를 내놓기도 합니다.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 여행을 가는 사람들보다 항공권을 따로 구매하고 호텔도 따로 예약해 자신이 자신의 여행을 디자인해서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래도 나는 국적항공사가 제일 편하다! 하시는 분이라면, ‘코드셰어’ 여객기를 찾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보통 국적항공사들은 자기 나라에서 파는 항공권이 가장 비쌉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도 해외보다 우리 나라에서 더 비싸게 표를 팝니다. (그러나 출발지와 항공권 구매지가 다르면 가격이 대폭 올라가게 해놓거나 아예 구매 자체가 안되도록 해놓기 때문에, 해외에서 표를 사서 한국에서 출발하는 여행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항공사들은 보통 국제적으로 여러 다른 항공사들과 제휴를 맺고, 여객기를 일일이 보낼 수 없는 지역에선 제휴 항공사의 여객기 일정 좌석을 확보해 자기 승객들을 태웁니다. 그러니까 제가 대한항공과 제휴를 맺은 해외항공사의 표를 구입하고 대한항공을 이용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럴 경우 보통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이 해외항공사들은 사람들이 친숙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우리 나라에서 총판을 두고 경쟁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기 나라에서보다 우리 나라에서 더 저렴한 표를 내놓곤 하거든요. 

5. “항공권 가격은 어떻게 정해져? 너무 비싸면 관리하는 데가 없나?”

  여름휴가 앞두고 표를 구하며 ‘비싸서 갈 데가 없다’고 투덜대던 다른 기자로부터 받은 질문인데요^^; 사실 같은 교통편이라도 철도나 버스 등은, 설사 민영화가 되더라도, 공공요금으로서 어느 정도 탑승요금으로서의 관리를 받기 마련이죠.

  그러나 비행기는 상당히 특수한 교통편입니다. 공급은 아주 제한적인데 한편으로 시장은 국제적으로 형성돼 있거든요. 다른 교통편들과 달리,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감독’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관행적으로 항공사들은 IATA라는 국제단체의 운임 기준표를 바탕으로 운임을 결정합니다. 이 단체도 2차 대전 막바지 민간항공회사들이 결성한 단체로서, 개별 항공사의 운임에 대해 강제력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각 항공사는 자체적으로 결정한 운임을 –해당 여객기에서 가장 비싼 운임을 기준으로- 국가(국토해양부)에 보고하는데요. 이것도 ‘신고’하는 운임과 ‘국가의 허가를 받는’ 운임으로 나뉩니다. 보통 신고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를 왔다갔다 하는 여객기 운임에 대해선 신고제, 허가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를 왔다갔다 하는 여객기 운임에 대해선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고제보다는 허가제가 갖춰야 하는 요식행위가 좀더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보고한 대로 통과된다고 봐야죠.

  그러나 어쨌든 항공권도 나라에서는 공공요금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IATA 운임 기준보다 과도하게 비싼 표가 나온다든지 운임상승률이 너무 가파르게 오른다든지 하면 기획재정부의 조사를 받게 돼 있습니다. 담합행위 의혹 등에 대해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감시하고 있죠.

PS. 여객기들에는 이외에 이른바 ‘G클래스’가 있습니다. 바로 패키지 여행에 들어가는 항공권인데요. 보통 휴가지로 많이 오가는 여객기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의 30%는 이 ‘G클래스’ 항공권으로 묶인다고 보면 됩니다. 항공권을 개별 구입하는 것보다 항공권 가격 자체는 상당히 저렴한 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저렴한 항공권’들과 1대1 비교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여행사 이윤 등등을 덧붙여 지불하게 되는 거죠.) 워낙 패키지여행 이용객이 많던 시절엔 이 G클래스 비중이 상당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추셉니다. 우리 나라도 패키지 여행이 주를 이루는 시대에서, 개별여행이 주를 이루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애깁니다. 

  항공사들은 출장 항공권도 다른 클래스로 관리합니다. 일반 여행객들을 겨냥한 항공권보다 훠얼씬 비싸다고 보시면 됩니다^^